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우드로 윌슨 (문단 편집) ===== [[제1차 세계 대전]]에의 참전 ===== 1914년 [[제1차 세계 대전]]이 일어나자 미국은 [[먼로 독트린]]의 전통에 입각해 될 수 있으면 유럽에 개입하지 않고 [[중립]]을 유지했다. 그러나 독일 제국의 무차별 상선 공격으로 [[루시타니아 호]] 침몰 사건이 발생해 미국 내에 반독감정이 격화된 상태에서 결정타로 독일 제국이 멕시코에게 미국과의 전쟁을 일으킬 것을 제안한 [[치머만 전보]]가 폭로되자, 결국 윌슨은 [[1917년]] 4월 6일, '''독일에 [[선전포고]]를 하고 전쟁에 참전'''하게 된다. 아이러니하게도 [[1916년]] 재선을 위한 유세에서는 전쟁불참을 내세워서 당선됐는데, 취임 한 달 만에 모든 게 뒤집힌 것이다. 다만 윌슨은 전쟁을 막기 위해 가능한 모든 일을 다하긴 했다. 그는 연합국과 독일을 중재하려 노력하며 평화협상을 여러번 제안했다. 그는 1917년 1월, 그 유명한 '승리없는 평화'를 연설하며 모든 인류가 평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. 하지만 이미 전쟁 중인 유럽은 눈깔 뒤집힌 지 오래였고, 멕시코에 대한 독일의 개입이 여러 번 드러나면서 참전 여론이 강해지는 와중에도 윌슨은 카이저의 [[황화론]] 개드립까지 꺼내가며(...) 참전에 반대했다. 그러나 [[치머만 전보]]가 공개되자 그런 노력은 헛수고로 돌아갔고 미국도 전쟁에 참전하게 된다. 전시 와중엔, 진보적 성향의 윌슨이었지만 국가가 일치된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확신으로, [[비뚤어진 애국심|광신적 애국주의자들]]이 모인 [[극우]] 단체들을 이용해 반전운동가나 노동운동가들을 탄압하는 어두운 면을 보이기도 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